사람이영희 소장 “전문가 독재체제는 민주주의의 독”

629eef3e80db6.jpg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에 취임한 이영희 교수 ⓒ함께사는길 이성수


환경연합 전문기관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전문연구기관인 시민환경연구소 신임소장에 이영희 교수(가톨릭대 사회학과)가 취임했다. 시민환경연구소는 1993년 문을 연 민간 전문연구기관으로 ‘시민의 눈으로 과학의 힘으로’란 가치를 내걸고 환경문제를 시민의 눈높이에서 보고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해 진실을 규명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 교수는 20년 넘게 과학기술의 민주화와 시민 참여 등을 주제로 연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온 학자다. 그는 과학기술과 환경문제를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며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취임을 축하한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민간 환경 연구소에 소장을 맡게 되어 영광이다. 시민환경연구소가 그동안 잘 해오고 잘 정립되어 있는데 그 기반 위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 않을까 한다.  


오랫동안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연구하고 활동한 걸로 알고 있다. 과학기술의 민주화란 무엇인가.  

흔히 민주주의는 투표로 결정될 수 있지만 과학기술은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의 논리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도 경우에 따라서는 투표로 결정될 수도 있고 되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순수과학기술의 명제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맞느냐 틀리냐를 투표로 결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GMO나 원전 등 과학기술이나 환경문제를 소수의 전문가와 관료에게만 맡겨두기에는 이것들이 시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시민들은 이해당사자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과학기술, 쟁점이 되는 과학기술에 대해서 시민들도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해 발언하고 더 나아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시민들은 대부분 공공의 연구개발에 실질적으로 재원을 대는 납세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납세자로서의 권리도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기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하지 않나.    

전문가들만이 가장 잘 알 수 있고 전문가들만이 해답을 낼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뿌리 깊은 전문가 주의, 과도한 전문가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민주주의는 일반 시민들이 주인인데 전문가 독재체제는 전문가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극소수의 전문가에게만 국한해야 된다고 믿는 신념체계가 바로 전문가 주의인데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는 이념이다. 이는 이미 120년 전 미국에 존 듀이라는 교육학자이자 철학자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는 사회가 점점 기술적으로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민주주의는 더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주의 원리는 일인일표인데 전문가주의는 아는 사람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원리와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기술적인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들의 능력과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문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민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사 역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전문가들도 한 목소리만 내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 내에서도 다른 해석과 답을 가지고 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쟁점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도 자기의 삶의 경험에서 체득하고 축적한 지식들이 있다. 이를 시민지식이라고 한다. 시민지식에 기반해 판단을 충분히 내릴 수 있다. 또한 기술 논쟁이라고 해서 기술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GMO는 생명공학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에 대한 가치 문제, 생명에 대한 가치 문제와 연동되지 않을 수 없다. 과학기술처럼 보이는 이슈라고 하더라도 그 내부에는 가치적, 윤리적, 안전, 시민 삶과 관련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시민들도 그 논의 과정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으며 또 참여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나

유럽은 과학기술, 환경문제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여 토론한 후 결론을 내리는 체계적인 시민참여 모델들이 있다. 합의회의, 시민배심원제도, 공론조사 등이 그런 것들이다. 특히 1990년대 말 만들어진 우르후스(Aarhus) 협약을 체결해 환경 정보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고 환경 관련 정책을 결정할 때 일반 시민들을 참여시키도록 했다. 이를테면 4대강사업이나 원전 정책의 경우 일반 시민들에게 반드시 정보 공개를 해야 하고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들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넣었다. 일반 시민들도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고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한국도 민주화의 역사에 있어서 시민참여나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와 시도들이 있었다. 김대중 정권과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그런 시도들이 있었다. 초기 단계라 우왕좌왕 하긴 했지만 진정성은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보수정권 내에서는 시민 참여의 양 자체도 줄어들었고 일부 진행된 것은 대부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요식행위나 시민들을 들러리로 세우는 일이었다. 


최근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문제가 뜨겁다. 시민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게 불안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보다 동질성이 강하다. 사회적인 현안에 대한 이해도나 관심도가 높다. 한쪽에서 논의가 일어나면 확산 속도가 빠르고 사회적 학습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또한 OECD 국가들 중 우리 국민들 교육 수준은 높다. 황우석 사태 때 다들 줄기세포를 이야기하고 광우병 때는 다들 프리온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리고 이미 그동안 국내에서도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공론화 시도가 있었다. 2008년 기술영향평가의 일환으로 조류독감에 대한 국가정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평가를 듣는 시민배심원 제도를 운영한 적 있다. 기술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시기에 탄생했던 개념으로 논란이 되는 기술을 도입할 때 그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평가해서 가급적 나쁜 영향은 미치지 않도록 하고 좋은 쪽으로 발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민간 차원에서 1998년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GMO에 대한 ‘합의회의’를 시작으로 1999년 생명복제기술, 2004년 전력정책 전반에 대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모으는 시민배심원 활동을 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최근엔 2015년 파리기후변화 협상을 앞두고 에너지, 기후변화 문제를 고민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참여하는 ‘세계시민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00인의 시민들이 무작위로 선발돼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고 서로 토의하여 심사숙고한 의견을 모아 협상 대표들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원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공론화를 한다는 것도 일반인들이 원전에 대한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받으면 그것에 대해 심사숙고해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민주화, 시민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은 소수의 각성된 시민들이 과외 노력을 하는 게 사실이다. 개개인이 공동체 사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그걸 숙제하듯이 강요하면 안 된다. 사회가 그런 학습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테면 언론매체에서 균형 잡힌 정보들을 제공하고 토론회 등 다양한 현안이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언론이 찬반 논리를 균형 있게 보도를 해주고 다큐 같은 영상물이나 토론 등이 방송되면 일반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정보에 노출되고 일터에서건 쉬는 시간이건 되새기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그러면서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민성 혹은 시민권이다. 시민단체 역할도 중요하다. 그동안 시민단체는 정부의 각종 위원회나 정책 자문 등에 참여하면서 시민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물론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일반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열려야 하고 시민단체가 그런 기회를 여는 데 앞장설 필요가 있다.


글 | 박은수 기자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