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강제욱 작가가 기록한 '더 플래닛'의 10년

때론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더 많다. 강제욱 사진작가의 사진이 그렇다. 홍수로 잠겨버린 마을, 물에 둥둥 뜬 트럭과 컨테이너, 무너진 집들, 그곳에 남은 아이들의 모습. 기후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라도 사진을 보면 기후변화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과 그 심각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년 동안 국내외를 오가며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현장을 비롯해 우리 인간들로 인해 변해가는 지구를 기록했다. 강 작가는 “재난 현장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강 작가는 10년의 기록을 담아 사진첩과 작품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완성된 작업은 아니다. 10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작업이 이제 막 시놉시스를 완성했을 정도로 방대하다. 열대우림, 숲, 강, 홍수, 태풍, 지진, 내전 등등. 우리가 사는 지구란 행성은 어떤 모습일까. 강 작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강제욱 ⓒ함께사는길 이성수


조소과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고흐 같은 화가가 되고 싶어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을 시작했다. 그러다 1995년 광주 비엔날레가 열렸는데 충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미술은 풍경, 인물, 정물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디오, 사진, 사운드 심지어 퍼포먼스까지 현대미술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후 현대미술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조소과를 선택했다. 회화과보다는 새롭고 다양한 매체를 배울 수 있겠다 싶었다. 그중 사진이 나에게 맞았다. 평면이라 좋았고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 작업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졸업 후 예술가로서의 역할과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둘 다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작가를 선택했다. 


첫 작품이 무엇이었나.

중국 식민지인 티베트의 현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대학 때 총학생회 활동을 했는데 그 당시 달라이라마 초청 강연을 계획했다. 하지만 외교부의 반대로 실현하지는 못했다. 그때 티베트에 대해 알게 되었고 졸업 후 티베트로 향한 것이다. 중국 감시와 교통편이 열악해 공사장 트럭을 얻어 타기도 하고 노숙하기도 했다. 그때 한 고생 때문인지 이후 아무리 열악한 곳에 가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웃음) 한 5개월 정도 머물면서 작업했는데 2003년에 운 좋게 사진 비평상을 받았다.


기후변화 등 환경과 관련된 사진 작업들이 많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사진 비평상을 받고 난 후 몇 년 동안 전시회를 하다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파라과이로 떠났다.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2년 정도 있었다. 그곳에서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주제로 작업을 해야겠다고 싶었다. 한편으론 열대우림이 우거진 곳에 살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러다 귀국 후 환경단체에서 정리한 세계 환경 100대 이슈를 읽었는데 엄청났다.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이슈가 없었다. 헌데 이렇게 중요한 이슈임에도 당시에는 그것을 기록한 사진작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충격이었다. 나라도 이 이슈를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어디를 가든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전체적인 스케치를 했다. 열대우림, 강, 도시, 숲, 지진, 태풍 등 환경하면 떠올릴 수 있는 작업들을 했다. 10년이면 작업이 완성될 줄 알았는데 이제 겨우 전체 시놉시스를 완성한 것 같다. 

 

Typhoon Haiyan (Anibong), Tacloban City, Philippines, 2014 ⓒ강제욱


아무래도 재난 현장은 작업하기 힘들지 않은가. 접근도 쉽지 않고 또 치안도 더 불안하지 않나.

어렵긴 하지만 가다보면 길이 있다. 고속도로 한 가운데 내려 걸어간 적도 있고 10킬로미터를 걸어서 시청 잔디밭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또 재난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곳이 언론에서 보여주듯 지옥은 아니다. 2014년 필리핀 타클로반에 태풍 피해가 났을 때 현장에 갔었다. 언론에서는 감옥이 무너지고 총격전도 이뤄지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그렸다. 현지 엔지오 사람들도 왜 가냐고 하더라. 겁이 나긴 했지만 피해가 심했던 빈민촌에 들어가 작업을 했다. 태풍이 지나간 후라 너무 더워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좀비처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동네 애들이 삼각대도 들어주고 어떤 아주머니는 튀긴 바나나도 주더라.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다며 좋아했다. 아이와 아빠는 자재들을 주워 무너진 집을 마치 천을 깁듯 다시 짓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생각보다 강인했다.   


안타까운 현장도 많이 접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망가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안쓰럽더라. 우리는 어릴 적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꿈을 상상하지 않나. 로켓을 갖고 놀면서 공학자를 꿈꾸고 차를 갖고 놀면서 카레이서를 꿈꾸고 인형을 갖고 놀면서 가수나 모델을 꿈꾼다. 또 장난감에는 그 물건을 사준 이와의 추억이 있다. 그런데 재난으로 그게 다 사라졌다. 꿈도 미래도 태풍으로 다 망가졌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다른 작가들과 ‘예술과 재난’이란 팀을 만들어 장난감을 고쳐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재작년과 작년 두 차례 아이들을 찾아 3D프린터를 이용해 장난감을 고쳐줬다. 현지 학교에 3D프린터를 기증하기도 했다. 물론 새장난감을 사주는 게 더 싸다. 하지만 이 장난감이 고쳐지듯 나의 미래 나의 꿈도 복원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 사실 당장 코앞에 문제들이 많은데 나는 사진만 찍고 파인더 뒤에서만 바라보는 일이 미안하기도 했다. 

 

Mangrove Forest, Olango Island, Philippines, 2012 ⓒ강제욱


현장에서 느낀 기후변화는?

내가 재난현장을 찍고 왔지만 우리 인류의 미래를 보고 있구나 싶더라. 지구의 미래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작업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인간이 노력하지 않으면 다 사라질 것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체감하지 못하고 가난한 나라들이 겪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목전 앞에 와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발생할 일이다. 한국만 피해가지는 않을 것이지 않나. 자연에는 선과 악이 없지 않나. 다큐멘터리 작가가 하는 일이 조금이나마 시각적으로 체감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계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다음에 갈 곳?(웃음) 다음 목적지가 나에게 가장 두근거리는 곳이다. 아마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그 생각뿐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강제욱 ⓒ함께사는길 이성수


강제욱 작가의 ‘The Planet 2007-2017’은 서울시 강남구 스페이스22에서 11월 2~21일까지 열린다.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글 | 박은수 기자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