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생을 걸고 시대를 살아 역사가 된 이들


 

혼란한 시대. 엄청난 말이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들어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엄청난 일은 늘 새로운 혼란함 가운데 언제나 당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가까이에서는 거리에서 사투를 벌이는 홍콩의 시민들이 있다. 우리가 모두 요동치는 역사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피와 절규로 알려주고 있다. 완성형의 역사가 없다는 것, 그래서 지금을 사는 일은 곧 과거와 미래로 분절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러니 시대가 혼란하다는 규정을 넘어서서 늘 삶의 자세를 점검하는 일은 언제나 가치를 가진다. 

 “사람은 여러 순간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어떤 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 시간이란 ‘되어 있음’ 이전에 존재하는 ‘되어감’의 시간이다. 그런 ‘되어 감’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패배를 모르는 절망에 거듭 맞서야만 하는 위험을 무릅쓰게 한다.” 

 10년도 더 전에 존 버거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에서 이렇게 썼는데, 그 당시에도 이미 주름진 얼굴을 한 노년의 지식인이었을 때였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나선 부시가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자 굳이 전쟁의 희생자들이 살던 현장을 찾아 나섰는가 하면, 현대 사회에도 지속되는 전통적 의미의 빈곤의 의미를 따져 물었고, 다국적 기업의 지배 체제에 놓인 세계의 곤란함에 대해서 글을 썼다. ‘되어 있음’ 이전에 ‘되어감’의 시간을 살고 있는 존재라면 그냥 있지 않고 무엇이든 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그는 자기의 삶으로 증명하고, 그 증명을 글로 남겨놓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비평가이자 예술가였으며, 생의 후반에는 농부이자 화가로 살았던 존 버거는 이제 세상을 떠났는데,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외에 그가 남겨놓은 저작들이 남았다. 다르게는, 삶이 남았다. 그래서 시대의 혼란함 속에서 어딘가로 도망치는 게 가능하다면, 존 버거의 생애는 좋은 후보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망칠 수 있다고 해서, 결코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자기 생을 걸고 시대를 살아 역사가 된 이들은 자꾸 또 등을 떠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등 떠밀려 나아가야 하는 곳에는 역시 도망쳐 왔던 바로 그 혼란함 혹은 어둠이 가득할 것이다. 이를 테면, 엘리 위젤이 자기의 작품 『밤』에서 묘사한 수용소의 밤과 같은 어둠을 피할 만한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위젤은 1944년 봄에서 1945년 봄까지, 아우슈비츠와 부나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고, 이 1년이 그의 70 평생을 좌우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위젤은 “자기와 같은 일반 수감자들 가운데 저항에 나선 이는 희박”했으며, “그들 대부분은 자기 목숨이라는 이익에 목을 매단 이들”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그는 고작 열여섯의 소년이었고, 이후 청년이 되고 노년이 될 때까지 줄곧 그 ‘밤’을 자기 내면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다.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을 세우고, 세계 여러 지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 삶이 곧 증거다. 어둠을 겪은 자들의 삶이 ‘지금은 없는, 그러나 미래에는 마땅히 존재해야 할’ 빛을 향하는 건 언제나 위안을 준다. 그런 삶들은 곧잘 우리가 읽고 해독해야 할 예언서는 아닐지언정 지도로서는 충분하다. 지도에는 꼿꼿한 혁명가로 살았던 란다우어의 이런 구절을 새겨두면 좋을 것이다.  

 “과거 자체가 미래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과거는 항상 생성되는 중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과거는 늘 변화하고 형태를 바꾼다.”

 참고로 말하자면, 란다우어의 『혁명』은 어딘가 있는 곳인 ‘토피아’와 어디에도 없는 곳인 ‘유토피아’에 대한 고찰로 시작된다. 딱 우리가 가진 지도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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