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책을 만들며


 

“딸아이가 목을 겨우 가눌 수 있게 되어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오른손 새끼손가락 하나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써요. 아이에게 장애가 생기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몰려왔어요. 그때 책을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딸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강연을 찾아 왔어요.”

 지난주 대구에 있는 도서관 강연 때 만난 선생님의 말씀이다.

 아서 프랭크의 저서 『아픈 몸을 살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간의 고통은 고통을 함께 나눌 때 견딜만해 진다. 누군가가 우리의 고통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고통을 보낼 수 있다. 고통을 알아봐 주면 고통은 줄어든다. 이 힘은 설명될 수 없지만, 인간의 본성 같다.’

 예술을 찾는 사람들에겐 다양한 목적이 있다. 슬픔과 고통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으로 예술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양한 예술 장르 중 책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 안에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고 슬픔을 달래는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고 고통이 반감될 리 없다. 

 새끼손가락 하나로 글을 쓰는 여중생의 마음을 어림짐작하자면 아마도 생을 살아낼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게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한다. 

 가까이서 독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내가 만든 책에 대한 생각과 반응을 직접 대할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예술의 다양한 역할 중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 거대담론이 아니라 아주 작은 쉼이라도 주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새끼손가락 하나로 정성껏 글을 쓰고 있을 소녀를 생각하니 내 게으름이 부끄럽다.

 작가로 살면서 사람들 곁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창작욕이나 명예욕 때문이 아니라 나도 아픈 몸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픈 몸에 갇혀 고립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책을 만들게 했다고 믿는다. 내가 느낀 고통과 슬픔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다.

내가 당신의 아픔을 아주 조금 알고 있다고 말이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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