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외면과 침묵 속 핵발전소 노동자


 

사건이 거대할수록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어렵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건일수록 해당 영역 안에서 일상이 펼쳐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 일이 핵발전소의 폭발과 같은 거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 미드 『체르노빌』이 엄청난 화제였다. 그때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드 덕분에 이제라도 술렁이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다. 대재앙 이후에도 살아남은 반려견이나 동물들을 ‘시멘트에 파묻어버리는 건’ 드라마적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유효한 대책이었다. 그러한 방식이 1986년 이후의 체르노빌을 대하는 세상의 시선과 거의 동일하기도 했다. 물론 핵발전소의 위험을 폭로하고, 지속적으로 핵발전소를 줄이기 위한 저항운동이 실질적으로 펼쳐져 왔지만 그와 별개로, 세계의 지도에서 체르노빌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거나 화산 폭발 같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로 소멸해버린 도시처럼 취급하는 거대한 외면과 침묵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또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핵발전소 자체의 위험성 안에서 일상적으로 피폭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반핵의사회와 사회건강연구회가 공동기획한 『핵발전소 노동자』는 핵발전소를 생업의 현장으로 삼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피아노를 치면서 토크 콘서트를 하는 음악가였고, 2010년 이후에야 핵발전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핵발전소에서 일을 했던 노동자 여섯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그들의 증언 속에서 우리는 아주 간신히 핵발전소 내의 어제와 오늘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핵발전소는 발전소가 폭발하는 정도의 큰 사고가 아닌 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매우 안전하고 깨끗하게 유지 관리되는 현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쩌면 만들어진 이미지일 수도 있다. 어떤 노동 현장이든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하는 영역들이 있게 마련인데 핵발전소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가령, 작은 불 정도는 소화기를 이용해서 끄지 않고 천을 덮어 다 연소되도록 둔다. 소방서에 알리거나 도쿄전력이나 도시바 등에서 관리센터 직원들에게 알리면 일이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가령 불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을 방화자로 의심하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 

 그보다 더 아찔한 일도 있다. 도쿄전력 직원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데이터 수정을 하기도 했다는 핵발전소 노동자 기무라 씨는,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여름에는 높은 출력으로 운전을 해야 해서 계획 수치를 넘는 경우에는 오차 범위 내에서 수치를 수정했다고 밝힌다. 수정이라고 쓰고 날조라고 읽어야 하는 맥락이다. “공무원들이 알 수 없도록 밤중에 몰래, 대형 컴퓨터에 연결된 유지보수용 컨솔 박스에서 원자로 출력을 줄이는 계수를 입력하고 수정합니다. 일상적으로. 그것은 저 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인데, 물론 예전엔 선배 직원들이 했지만. 그러나 당시로서는 최종적으로 제가 했어야 합니다. 한밤중에. 날짜가 바뀔 때.” 

어처구니없는 방화관리나 수치 조작 같은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이야기는 불안정한 고용과 일상적인 피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쿠시마에서 실제로 사고가 일어난 이후에도 제염작업이나 보수작업을 할 때는 오염물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데, 피폭선량 초과 방지의 명목으로 해고가 상시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피폭 노동 이후에 목이 붓고, 코피와 혈뇨가 보이고, 쉽게 피로해지는 탓에 병원에 갔던 다나카 씨는 의사가 특정 부위를 눌러보며 아프냐고 물었을 때 사실과는 다르게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불안정한 고용이 더 두렵기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다나카 씨 외에도 많은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그렇게 일하고 있다. 생업 혹은 노동은 언제나 ‘무엇에도 불구하고’ 벌어지는 일이다. 

 p.s. 저자는 오랜 인터뷰 끝내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나”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핵발전소의 노동은 일상적인 노동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읽기 괴로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괴로운 독서를 괴로운 마음으로 열렬히 권하고 싶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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