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돼지열병이 몰고 온 생명경시 광기

2019-11-01


지난 10월 2일 동물권행동 카라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과 관련해 생매장 살처분 즉각 중단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인도적 기준 준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지난해 8월 중국에서 시작됐다.  2018년 8월 1일 중국은 ASF의 확진을 공식 발표하고 방역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ASF는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 중국 내 사육돼지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이어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북한, 라오스, 필리핀, 미얀마에서 차례차례 ASF 발병 소식이 이어졌고 한국도 이제 감염국이 되었다.  

 9월 17일 파주를 시작으로 연천, 김포, 다시 파주에서 ASF가 확진되었고 24~27일 강화에서만 5곳, 10월 2일 파주 2곳 추가, 10월 3일 파주와 김포 각각 다시 추가 확진, 10월 9일 다시 연천에서 확진 등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현재까지(10월 25일 기준) 14번째 확진 농가가 나왔다. 방역 당국은 감염경로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방역의 허점들만 속속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돼지열병에 감염된 한국

 한국 정부의 대응은 예방 단계에서부터 몹시 아쉬웠다. 오염된 축산물과 음식물쓰레기를 통한 ASF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은 이미 해외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강조되고 있었다. 과거 ASF가 발병한 1957년 포르투갈, 1969년 스페인, 1978년 몰타, 1983년 이탈리아, 1985년 벨기에, 2007년 조지아는 모두 잔반사료로 인해 ASF가 확산된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불법 수입축산물 등에서 ASF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되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은 음식물쓰레기 동물 급여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오염된 돼지고기가 음식물쓰레기에 섞여 이른바 ‘잔반 돼지’에게 공급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스툴에 갇힌 돼지


지난 5월, 북한이 ASF발병을 공표하면서 한반도에서도 ASF가 확인되었을 때 국가가 대처해야 하는 방향은 명백했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은 미온적이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5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리카돼지열병 예방을 위하여 음식물쓰레기 동물 급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묵살 당했다. 정부가 잔반돼지에 대한 음식물쓰레기 급여를 중단한 것은 ASF가 국내에서도 확진된 9월 17일이었다.

 발병 이후에도 빈틈이 많았다. 확진 농장이 나온 날 파주시 하천에서 새끼 돼지 사체 1구가 발견되었지만 시료채취 및 정밀검사를 하지 않은 채 매몰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돼지를 사육하는 경우 규모나 목적에 상관없이 전체를 전수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가 감염경로가 미궁에 빠지자 실내에서 키우던 반려돼지 1마리를 문제의 원흉으로 몰아갔다. 


 생살처분에 이어 멧돼지 사냥까지

 우리는 돼지 가축전염병에 대한 경험이 있다. 2010년 말부터 이듬해까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제역이 그것이다. 당시 한국은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고자 구제역 백신을 도입하지 않고 있었고 소, 돼지 등 우제류 동물 살처분으로 대응했다. 350여만 마리의 돼지와 소들이 당시 살처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악몽으로 기억하듯 대다수 동물들이 땅 속에 산 채로 매장되었다. 이를 계기로 백신이 도입되면서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 당하는 동물 수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

 구제역과 달리 ASF는 공기로 전염되지는 않지만 생존능력 자체가 매우 강한 편이고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살처분 확대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발병농장으로부터 차량과 이동 등 역학적 관계부터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을 제언한다. 백신이 아직 없는 까닭에 예방이 더없이 중요하고, 일단 발발했으면 철저한 역학조사와 차단을 통해 발병 지역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역시 살처분에 의존했다. 

 발병 여부 검사는 농장의 돼지들을 전수 조사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농가당 기껏해야 10마리 정도가 한계이고 이들 중 양성 개체가 있으면 해당 농가 전체가 발병 농장이 되어 전부 살처분 되는 것이다. 발병농장 살처분도 엄밀히 말해 ‘예방적’ 살처분에 해당한다. 다만 같은 농장인 경우 동물들이 동일한 축사이거나 인접한 축사에서 지내고, 또 같은 사람들로부터 같은 사양의 관리를 받고 있는 하나의 농장이라면 이미 바이러스가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농장 전수검사와 그에 따른 방역조치가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는 발병 확진 농장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은 이러한 점에서 근거 있는 조치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예방적 살처분은 위험도 판단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 

 고병원성조류독감, 구제역과 같은 1종 가축전염병 발발의 경우 발병농가 반경 500미터 이내 관리지역은 위험도 평가에 따라 ‘예방적’ 살처분을 할 수 있고, 실제로도 ‘예방적’ 살처분의 일반적 범주가 되곤 했다. 하지만 발병 반경 3킬로미터 이내 보호지역부터는 예방적 살처분의 당연한 범주라기보다 위험도가 높은 경우 살처분을 확대 실시할 수 있는 가능 범위로 보아야 한다. 즉 위험도 평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방역 당국은 마치 예방적 살처분의 범주를 최대화 하는 것이 방역을 강화하는 것인양 대응해왔다. ASF 확진 초기부터 역학적 근거 없이 예방적 살처분의 범주를 반경 3킬로미터 이내 보호지역 내로 넓게 잡은 것이다. 특히나 이번 ASF 살처분에 있어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대화되었다. 강화도의 경우 행정구역에 따라 강화도 내의 모든 돼지가 싹쓸이 살처분 되었고, 연천은 수매 후 살처분 범주가 10킬로미터까지 확대되었다. 파주와 김포 역시 행정구역 내에서 수매 후 남은 돼지들이 전부 살처분 수순을 밟아야 했다.

 심지어 이러한 무차별 살처분은 야생동물인 멧돼지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은 지금까지 총 12마리다.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멧돼지가 감염 개체가 있는 만큼 ASF 바이러스의 확산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고 멧돼지로 인한 추가 감염 확산의 위험을 최소화 하는 일이야말로 방역 당국의 우선 과제다. 사육돼지가 있는 농가와 멧돼지의 접촉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철책을 통해 멧돼지의 이동을 제한하고 전문가 예찰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는 멧돼지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민간에 보상금을 내걸고 총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총기를 사용하는 여러 사람의 집중 사냥은 멧돼지를 놀라게 함으로써 멧돼지 장거리 이동을 낳을 수 있다. 또한 감염 멧돼지 출혈로 인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데 문제는 지자체 멧돼지 사냥에 수렵견들이 동원되어 여기저기 피를 흩뿌리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충북도와 같이 도내 행정구역 내 멧돼지 숫자를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것이 ASF 확산 위험을 어떤 식으로 제어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ASF의 감염경로는 밝혀진 바 없지만 야생 멧돼지 살처분은 광기에 가깝게 이뤄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통제되지 않고 있는 총기 사살 허용에 대한 방침을 재검토하고 포획과 예찰, 멧돼지의 습성을 이해한 철책 설치 등으로 방역의 효과성을 담보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생명경시 광기를 멈춰라  

 10월 21일 세종청사 앞. 화가 난 잔반돼지 농장주들이 돼지 40여 마리를 시위에 이용했다. 음식물쓰레기 사료를 금지하는 조치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ASF 국면에서도 음식물쓰레기를 돼지에게 급여하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몸싸움 한 가운데 있게 된 돼지들은 트럭 위에서 농장 관계자에 의해 공중으로 내던져졌다. 잔반돼지 시위는 오늘날 폭력적인 축산의 단면이요, 작금의 문제에 대한 몰이해였다. 

 10월 5일 강화도에서 유일한 돼지이자 마지막까지 버틴 반려돼지가 결국 살처분 되었다. 강화도에서는 살처분에 있어 농장 환경이 아닌 반려돼지 1마리에 대해서도 예외를 남기지 않았다. 반려돼지의 보호자는 끝까지 살처분에 저항하며 제발 ASF 감염 여부라도 검사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강화도는 검사조차 해주지 않고 행정대집행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보호자를 반강제로 설득했다. 그렇게 강화도에서는 총 9마리의 반려돼지가 검사 없이 살처분 당해야 했으며, 마지막 남은 반려돼지의 가족은 울고 또 울었다. 

 9월 17일 밤 파주 살처분 현장. 오마이뉴스는 드론으로 촬영한 살처분 당시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의식이 있는 살아 있는 돼지들이 포크레인에 집혀 발버둥 치는 채로 땅속에 묻힌 FRP 수조로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현장 살처분은 17일 오후 4시 30분부터 18일 오전 6시 30분까지 진행되었다. 영상은 단 10분간이었지만, 이 10분간의 영상에만 최소 5마리 이상의 돼지들이 생매장 되고 있었다. 방역 당국은 살처분 매뉴얼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돼지들이 고통 속에 죽어갔다. 

 사육돼지, 멧돼지, 반려돼지를 가리지 않는 돼지들의 살처분 숫자는 지금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광기를 멈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글 / 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  

사진제공 /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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